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침대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책들은
자비 없이 제거해야 한다.




사명을 찾아서

여기에 없는 것들 시리즈 / 여기에 없는 것들로 책을 만듭니다.
미리보기
지은이: 유리관
발행일: 2025-11-30
사양: 128x188mm(B6) · 232쪽
ISBN: 9791195556557

가격: 16,000원

책 읽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
책은 왜 자꾸 나오고,
출판사는 왜 자꾸 생기는 걸까?


작가 유리관이 앞으로 차릴지 안 차릴지 모를 미래의 어느 출판사의 사명 후보와 그 뜻을 생각해내는 책. 이것이 《사명을 찾아서》다. 이 책을 구매할지 안 구매할지 모를 미래의 독자 여러분, 이 책의 서두를 읽어주길 바란다.

해보면 안다? 겪어보면 안다? 당해보면 안다? 그 전에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. 출판사를 차리겠다는 허튼 생각……. 요즘 같은 시대에는 ‘차린다’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. 출판사를 차린다는 일의 실상은 일종의 별명 만들기에 더 가깝지 않은가?
내게는 다음과 같이 느껴진다. 어쩌면 출판이라는 일의 정수는 이 나라에서 제공하는 출판사 검색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특정한 정체를 지시하는 사명(社名)을 하나 만드는 데 있을 뿐인 거 아니냐? 그 외 나머지 도서 따위와 관련된 일들은 다 ‘부차적인 잡무’일 뿐이다. 출판사 등록만 되어 있고 책은 내지 않는 저 수많은 출판사들이 뜻하는 것은?!
만약 우리가 인쇄를 출판의 필수 요소로 여기지 않겠다면, SNS 에 가입할 때의 닉네임 정하기와 출판사명의 등록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? 이는 합당한 질문 같다. 혹시 구분할 수 있다고 하면, 그로부터 출판이란 무엇인지를 역으로 추적(영 쓸모없는 일인 것도 같지만)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. 하다못해 인터넷-표현 환경에서 개인 계정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……?
당장 떠오르는 하나. 출판사명이라고 하면 어쩐지 개인적일 수가 없다. 식당 이름처럼 대표 이름을 직접 쓴다든지 성을 쓴다든지 (최가네출판 등) 하는, 그런 건 곤란하다. 이 점은 개인이라는 개념이 물심양면으로 원 없이 폭주하고 있는 오늘날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. 왜 출판사는 개인적일 수 없을까? 책이라는 물건에 내재된 특별한 성질 때문일까? 다른 상품과 구분되는? 혹시 이에 비추어보건대, 사실상의 전자출판사라고도 할 수 있을 우리의 인터넷-별명들은 ‘지나치게 개인적으로’ 지어진 것이 아닐까? 아니…… 대체 무슨 소리지? 또는…… 어쩌면…… 너무 성급하게 굴지는 말자.
앞으로 차릴지 안 차릴지 모를 미래의 어느 출판사의 사명 후보와 그 뜻을 생각해내는 것이 이 회의의 목표였다. 회의란 모름지기 피할 수 없고 피하고 싶은, 항상 필요하지만 별 효용은 없는, 시작은 하기 싫은데 끝내기엔 석연치 않은 것이다. 그러나 이 회의는 전혀 괴롭지 않았다. 대부분은 일터에서 일하는 척하면서 짬짬이 딴짓으로 몰래 썼기 때문이다. 당연히 모든 묘사된 인명, 단체, 회사 및 그 외 일체의 명칭, 사건과 에피소드 등도 모두 허구로서 창작된 것이다. 왜 아니겠나?
이미 존재하는 출판사명과 겹치지 않도록 최대한 피했으나 등록되지 않은 독립출판사들과 미래의 출판사들에 대해서까지 보장할 수는 없다. 어차피 우리에게는 이 이름들에 대한 아무런 권리도 없다. 아니 그래서 출판사를 차린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?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.
― <회의를 지나서>, 본문 5~7쪽


여기까지가 이 책의 첫 부분이다. 21세기의 출판사는 가치 창출을 위해 무엇이든 되어야 하고, 더는 출판사가 아니어야 한다. 어쩌면 이미 아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. 하지만 원래는 무엇이었지? 정말 그것이었나?
우리가 꼭 출판사의 별명만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. 그게 무슨 회사든 상관 없다. 회사는 사명(使命)을 잊게 되거나 망하게 된다. 사명을 잊지 않은 가상의 회사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. “유명한 자보다 이름 없는 자를 추모하는 것이 더 어렵다. 역사적 해석은 이름 없는 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”라는 발터 벤야민의 묘비명대로.

“당신은 절대 출판사를 만들지 마라”
저주와 악담으로 채워진 희망 가득한 도서
읽으면 당신도 출판사를 차리고 싶어진다!


책 읽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, 책은 왜 자꾸 나오고, 출판사는 왜 자꾸 생기는 걸까? 만약 출판사의 쓸모가 다른 업종의 쓸모보다 형편 없는 것이라면…… 유리관 작가는 어째서 더 의미 없고 쓸모 없는 출판사를 자꾸만 지어내어 우리에게 소개하는 걸까? 가상의 출판사의 사명을 짓는 일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무용한 일일지도 모른다.
그리고 그 엄청난 무용함이 문학의 본질일지도 모른다. 이 책을 문학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? 솔직히 그마저도 확언할 수 없다. 《사명을 찾아서》는 문학의 무용함을 찬양하지 않는다. 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저주와 악담이다.
무엇을 왜 출판할 것인가? 《사명을 찾아서》는 직접 답을 주거나 질문하지 않는다. 출판사를 차리지 말라고, 오로지 상상 속에서만 차리라고 명령하는 것 같다. 당연하게도 누가 하지 말라고 하면 제일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.
출판을 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사한다. 용기 따위는 없어도 된다. 하지 말라고 하니까 해야 할 뿐이다.




지은이:유리관

일해야 한다, 일하고 싶다, 일하기 싫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출판노동자. 생계 외 마음의 보전을 위한 취미로 읽기와 쓰기를 하며, 문예계 팀 블로그 곡물창고(gokmool.blogspot.com)에서 사이버 창고관리인으로도 일하고 있다. 일기집 『교정의 요정』(민음사, 2024)을 썼다.